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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일지

3. 롤스로이스 미학

by 해방클럽장 2022. 9. 17.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들은 모두 알콜 중독자들입니다.
 
끝판왕 '구씨' 만큼은 아니지만 주인공들 모두 유일한 해방구로 연일 술을 택합니다.
 
멀고 먼 통근이 힘겨워도 언제나 술 마실 힘은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마시는 술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맨정신으로는 쏟아낼 수 없는 아픔을 술을 먹어야 토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JTBC 나의 해방일지

 

 
 
모르는 사람과의 처음 술자리 대화 패턴은 정해져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나이 맞추기 게임을 합니다.
 
상대방 나이를 일부러 낮게 부르는 것은 기본적인 에티켓입니다.
 
괜히 노인 취급하고 욕 먹는 것보다 연장자의 기분을 맞춰 주는게 현명한 처세입니다.
 
나이 맞추기 게임이 끝나면 누가 존댓말을 하고 누가 반말을 할지 친구를 먹을지 정해 집니다.

 

 
 
출처 - JTBC 나의 해방일지

 

 

 

그 다음에는 묻는 것이 어디 사는지 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판교에 사는 사람이 분당에 산다 말하지 않고,
 
분당에 사는 사람이 성남에 산다 말하지 않고,
 
성남에 사는 사람이 경기도에 산다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들은 경기도 어딘가에 붙은 산포시에 산다고 자괴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디에 사는지 얼마나 비싼 집에 사는지에 따라서 계급이 결정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지 몰라. 어차피 자기는 경기도 안 살 건데 뭐 하러 관심 갖냐고 해."
 
- 극중 염창희가 과거 전 여자친구의 말을 회상하며

 

 
 
출처 - JTBC 나의 해방일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묻습니다.
 
직업의 귀천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혹시나 앞으로 계급 상승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어서 성남에서, 분당으로, 또 판교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겠죠.
 
 
 
 
나이도, 주거지도, 직업도 변변치 못한 사람의 마지막 자랑이 자식 자랑일 것입니다.
 
나중에 판검사나 의사가 될 수 있는 영특한 자식은 내 계급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희망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사회적 계급에서 밀리면 술자리도 같이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안 어울리는 자리에 끼어봐야 가진 사람들의 온갖 반말 섞인 조언과 조롱을 감내해야 할 뿐입니다.
 
 
"나도 좀 나이스하고 양반 같은 인간들이랑 일하고 싶어. 근데 왜 못 그러냐? 내가 양반이 아니라는 거지. 왜? 끼리끼리는 과학이니까. 쓰리지만 내 수준이 여기라는 거. 그래서 늘 '양반 되자', '저 인간이 양반 되길 바라지 말고 내가 양반 되자' 득도 한다 내가."
 
- 극중에서 염창희가 친구에게
 

 

 

 

출처 - JTBC 나의 해방일지

 
 
 
알콜 중독자 끝판왕 '구씨'는 나이도, 직업도, 거주지도 안 알려주는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양반이 되고 싶은 염창희는 그런 구씨를 염탐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구씨가 서울 사람들만 쓰는 비데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엄청 고가의 차량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염창희는 5억5천짜리 자동차의 열쇠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화장실에 버려둔 구씨를 홀로 추앙하게 됩니다.
 
나이도, 직업도, 거주지도 더 이상 궁금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동차에 5억 5천을 쓸 수 있는 남자.
 
고유가 시대에 6,750 cc 연료통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남자.
 
범퍼가 살짝 스쳐도 2000만원 수리비를 물 수 있는 남자.
 
구씨는 단순히 알콜 끝판왕이 아니고 자본주의 끝판왕이었던 것입니다.
 
 
 
 

출처 - JTBC 나의 해방일지

 
 
 
나이도, 주거지도, 직업도 물을 필요가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진 열쇠 중의 열쇠가 롤스로이스 열쇠입니다.
 
그런데 정작 롤스로이스 주인은 자동차가 필요 없어 무심하게도 차 열쇠를 냄새나는 화장실에 처박아 둡니다.
 
절대 열쇠를 쥔 그가 판교가 아닌 경기도 끝자락 산포시에 처박혀 매일 빈 가슴을 술로 채웁니다.
 
절대 열쇠의 힘은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가 봅니다.
 
무엇이 절대 열쇠를 소유한 한 남자를 이토록 부숴 버린 것일까요?
 
 
 
 
출처 - JTBC 나의 해방일지

 

 
 
아내와 사별하고 삶의 에너지를 잃어 버린 아버지에게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우린 더 화목해질거에요. 근데요. 4인 가족이 화목해질려면 차가 있어야 돼요."
 
- 극 중 염창희가 아버지에게.
 

 

 

 

어떤 차를 타느냐 보다. 누구와 같이 타는지 그게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어디에 사는지 보다, 누구와 같이 사는지 그게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 보다, 어떤 사람인지 그게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절대 반지건 절대 열쇠건 그것이 나를 묶고 있는 자물쇠를 풀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를 묶고 있는 자물쇠에는 열쇠 구멍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방노트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 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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