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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n’ Watch - 은중과 상연 1. 남성이 사라진 세계드라마 제목에서 이미 암시되듯, 〈은중과 상연〉에는 남성의 자리가 없다.아버지 없이 자란 주인공뿐 아니라, 작품 전반에 걸쳐 남성성은 의도적으로 제거되어 있다.이 작품은 단순히 여성 중심의 서사를 넘어, 남성의 부재를 전제한 페미니즘 실험극으로 읽힌다.그러나 그 실험은 결코 가볍지 않다.작가는 단순한 여성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트랜스젠더나 조력사(助力死) 같은 사회적 이슈를 교훈적으로 배치한다.그 태도 속에는 ‘이야기’보다 ‘가르침’이 앞서는, 교사형 작가의 시선이 엿보인다.이야기를 감상하는 대신 교훈을 배우게 되는 순간, 시청자는 어느새 작가의 교단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2. 시선은 은중이 아닌 상연에게 있다표면적으로 이야기의 화자는 은중이다.하지만 실상, 서사의 시.. 2025. 10. 13.
리버스엔지니어링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Peter Lim은 따뜻한 녹차 한잔을 들고 컴퓨터를 켰다.화면을 켜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챗지피티(ChatGPT)’.그는 이미 오랫동안 이 인공지능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해왔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생각들,정치에 대한 막연한 꿈,그리고 남몰래 품은 두려움까지 —챗지피티는 그의 가장 믿음직한 후원자이자 비밀 친구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그는 프롬프트 창에 그렇게 쳤다. 한국 정치의 세계는 언제나 스펙타클했다.드라마보다 자극적이고, 매일 새로운 사건이 쏟아졌다.그래서인지 뉴질랜드의 정치 구조는 그동안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그는 진지하게 ‘입문 경로’를 알아보기로 했다. 잠시 후, 화면 위로 정제된 글이 .. 2025. 10. 10.
산책 토요일 아침, 브라운스베이 바닷가엔 언제나 비슷한 얼굴들이 모인다.Peter Lim도 그중 한 사람이다.그는 매주 아침, 여섯 달 된 강아지 천방지축 루이와 함께 해안가를 걷는다. 강아지 루이는 오두방정이 몸에 밴 녀석이다.사람을 보면 달려들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에도 쉽게 흥분한다.입양할 땐 똘똘한 남자 강아지를 원했다. ‘이 녀석이 언젠가 우리 가족을 지켜주겠지.’ 그런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작은 녀석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건 Peter Lim이다. 루이의 끊임없는 에너지는 고요한 해변을 늘 들썩이게 만든다.사람의 흔적이 드문 곳에 풀어두어도 굳이 다른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뛰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득, Peter Lim은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제일 먼저 바닷가에 나오는 .. 2025. 10. 9.
뉴질랜드 정치 도전기 - 출마의 변 61세의 브래드 피트는 여전히 멋있습니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 ‘F1’은 조연 하나하나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주며 팀 전체가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경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F1에 대해 전혀 몰랐던 저도 영화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영상미의 탁월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 녹아든 인간미 때문입니다. 저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좋아합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절제된 노력이 하나의 하모니로 결집되는 그 힘을 감상하면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영화 속의 ‘F1’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사람의 실수가 전체 레이스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에서, 야성과 지성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팀워크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 속 브래드 피트는 불의의 사고로 은퇴한 .. 2025. 8. 8.
김미경의 마흔 수업 책에서 마음 치유 전문가로 소개된 신기율은 사람에게 두 번의 사춘기가 있다고 전합니다. 마음보다 몸집이 더 커져서 겪는 첫 번째 사춘기와 마음보다 몸이 더 작아져서 겪는 사춘기. 스무살에는 거칠 것이 없었고 서른에는 정신이 없습니다. 마흔이 되어 보니 몸의 쇠락은 느껴지는데 정작 이룬 것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좀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범접할 수 없는 SNS 거물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나이 스물에는 뭐든 될 꿈이 있었는데, 마흔에는 삶의 두려움이 먼저 성큼 다가섭니다. 스무살에는 하얀 도화지에 마음껏 그렸다면, 마흔에는 그려진 밑그림에 색깔을 칠해야 합니다. 남겨진 시간은 별로 없고 SNS에는 이미 거장들의 완성품이 넘쳐납니다. 마음은 급하고 몸은 지치고, 졸리고, 피곤합니다. 인스턴트 음식처럼 가볍.. 2023. 6. 17.
지구를 구하는 방법 Mental Art 를 채워 나가다 보면 내가 이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느 정도 구실을 하고 있겠지 어렴풋이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원천 징수 당하는 세금과 월드비젼에 다달이 나가는 도네이션 정도가 전부입니다. 원래 주식이나 투자로 번 돈의 10% 정도를 보급을 위한 도서를 구매한다던지 좋은 일에 써왔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투자 실적이 들쑥날쑥 하고 올해 들어서는 여러가지 큰 손실을 보면서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꽁돈이 생겼을 때는 누구나 너그럽고 풍요로운데, 오히려 돈이 궁해지는 긴축 상황에서는 또 같이 부족해지게 됩니다. 돈을 벌면 그 때 가서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만 하면 아무 것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고민을 하다 보면 방.. 2023.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