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방일지

14. 삶의 기본 모드 - 고난

by 해방클럽장 2023. 2. 11.

 

 
 
태풍이 온다. 그런데 막상 할 일이 없다.
 
처분하기 애매했던 물건들은 이미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집을 메우고 있던 가재들이 이제 차고 하나 분량 밖에 남지 않았다.
 
물에 젖은 물건들은 불과 하루만에 썩기 시작하는데,
 
냄새가 나서 도저히 집 안에 둘 수가 없다.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삶의 끝은 죽음이고, 죽음 이후에는 썩는다.
 
 
 
 
 
 
원래 사람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나무에 달린 과일을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먹으면 죽는다고 한 과일을 먹게 되면서 일이 틀어졌다.
 
그 이후로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고,
 
매일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달콤한 과일을 먹던 존재가 쓴 맛의 채소를 먹게 된 것도 그 이후다.
 
사람은 흙에서 난 식물을 먹고, 끝내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대다수의 지구인들은 하루 종일 일한다.
 
좀 운이 좋은 상위 10%의 사람들만 자신의 시간을 갖는다.
 
그들은 8시간 일하고 8시간 자고 2시간 정도 먹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6시간 정도 남는 시간도 출퇴근을 비롯해 소소하게 낭비되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부류의 사람들이,
 
하루에 고작 2~3시간 정도 자신을 위해 쓰면서 행복해 한다.
 
삶의 기본 모드는 고난이다. 즐거움은 짧다.
 
 
 
 
 

 

 
 
통계가 나왔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하위 50% 계층의 자산의 가치가 두 배 이상 올랐다.
 
2년 동안 모두가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만일 내 자산의 규모가 동 기간 두 배가 되지 않았다면 내 계층은 내려앉고 있는 중이다.
 
통계 범위를 넓혀 보면 2007년부터 2011년 사이에 동일 계층의 자산은 83% 증발한다.
 
2007년에 굴러 떨어진 사람들의 자산은 꼬박 12년 뒤에야 원상복구 된다.
 
주말에는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가 폄하 된다.
 
월요일이 시작 되었고 좋던 싫던 사람들은 일을 시작해야 한다.
 
 
 
 
 
 
 
처음 신앙을 접한 사람들은 세상에 가득 찬 고난과 고통을 보고 창조주의 숨은 의도를 의심한다.
 
나쁘고 못된 사람이 벌을 받으면 이해가 가지만,
 
착하고 열심히 살던 사람이 벌을 받으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성경은 창세기가 아닌 욥기다.
 
욥은 신앙이 좋은 사람이고 많은 부를 거머쥐었던 사람이다.
 
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거리로 쫓겨 난다.
 
이 성경은 욥과 그의 친구들의 고난에 대한 논쟁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은 둘 다 틀렸다고 지적할 뿐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신은 고난의 의미는 말해줘도 모를 것이라면서 이야기를 안 해 준다.
 
 
 
 
 
 
 
 
올해가 시작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서 분과 초를 아끼며 살았다.
 
푸쉬업을 매일 200개씩 하고, 밥 먹고 30분 산책을 했다.
 
매일 간헐적 단식과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서서히 변경했다.
 
한 달에 1킬로 빼려고 했던 몸무게는 벌써 2킬로가 빠졌다.
 
정신 건강을 위해 매일 묵주 기도도 하고, 성경 공부도 했다.
 
매일 온라인 상점을 업데이트 하면서 매출은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침수가 일어난 저녁은 내리는 비도 잠시나마 축복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삶은 고난이다.
 
열심히 착하게 살던 내게 왜 이런 고난이 벌어진 것인지 묻는 것은 우문이다.
 
무역 분쟁도, 전염병도, 물류대란도, 전쟁도, 홍수도,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런 일들은 원래 일어날 일들이다.
 
내게 왜 고난이 없는지 묻는 것이 현문이다.
 
 
 
 

 

 
 
 
삶을 고난의 시점에서 보면 퍼즐이 풀리기 시작한다.
 
홍수가 이미 일어날 일이었다면 내 삶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불과 몇 일 만에 짐을 옮기고, 카펫을 뜯고, 썩은 집보드를 털어내는 일은 원래의 내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라인 상점이 대박으로 현금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돈을 꾸러 다녀야 했을 것이다.
 
자동차 두 대가 날아가고 인테리어 시공 2년만에 모든 것을 다시 털어내고 침수 지역으로 판명되어 최소 자산의 30%가 날라갔다.
 
그런데도 정신이 이토록 멀쩡한 것은 그동안 정신적인 내공을 키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연휴 내내 해방 캠프 베타 테스트를 위해 대접했던 손님들은,
 
오히려 주간 내내 돌아가면서 하나 둘 나타나서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여 주었다.
 
 
 

 
 
 
 
 
난 고작 한 달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살아 남은 것은 나였다.
 
단 하나의 준비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삶이 고난이라면, 살아 남는 것은 축복이 된다.
 
홍수가 기본 디폴트 설정이라면 내가 살아온 삶은 나를 위한 것이지 다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것이다.
 
열심히 살아서 살아남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열심히 살아도 굴러 떨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억울하지만 원래 그런 것이 삶이다.
 
이것을 빨리 깨달은 석가모니는 산에 올라, 매일 몸과 마음을 수련 해서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하는 돌덩이가 되고자 했다.
 
 
 
 
모든 것이 물에 잠겨도 살아남은 것들이 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물이 딱 책상 밑으로만 잠겨서 컴퓨터가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운명적이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운명이다.
 
 
 
 
 
 
 
신은 욥에게 고난의 이유 같은 것을 해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신다.
 
신은 그저 욥을 회복 시키시고 복권 시키신다.
 
이것이 창세기 전에 기록된 첫 번째 성경의 이야기고 구약과 신약을 더불어 계속 되풀이 된다.
 
삶은 원래 고통이다.
 
고통의 의미는 회복과 해방의 약속으로 이해될 수 있다.
 
회복과 해방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고통은 빨리 끝내야 할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사는 동안은 쓴 뿌리를 먹어야만 할 것이다.
 
난 원래처럼 달콤한 과일이 가득한 낙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난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채소를 먹고. 푸쉬업을 하고. 달린다. 그리고 글을 쓴다.
 
 
 
 

'해방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상처 뿐인 영광  (0) 2023.03.15
13. 왜 하도영처럼 살지 않는가?  (0) 2023.01.23
12. 무엇이 영광이란 말인가?  (0) 2023.01.16
11. 두려움 - 끝  (0) 2022.12.15
10. 두려움 2편  (0) 2022.12.11